나 자신에게로의 짧은 여행, 도쿄.
아이 둘 육아를 잠시 접고, 필름 카메라와 백팩 하나를 매고 도쿄로 떠났다. 1박 3일간의 짧은 시간동안 재즈바, 오다이바, 도쿄의 골목을 걸으며 마주한 것들에 대해.
어떻게든 시간이 될때면, 혼자 짧게 비행기를 타고 떠난다. 아무도 신경쓰고 싶지 않고, 오로지 나의 욕구만을 바라보고 싶을 때가 있다. 걷기, 멈추기, 쉬기, 먹기, 그 사이 생각하기까지.
아이 둘을 본다는 건, 한없이 충만한 일이지만, 동시에 나라는 한 존재의 욕구를 완벽히 내려놓아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차를 탈때 나의 음악적 취향은 접어둬야 하고, 만화에 나오는 주제가나 최근 어린이집에서 듣는 동요로 대체된다. 가끔 최신 히트곡으로 합의를 보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 또한 본디 나의 취향과는 거리가 약간 있다. 먹을 것이며, 바깥 놀이할 때도 대체로 반복되는 패턴.
"내가 제일 중요한데, 나한테 맞춰야지!" 라고 하는 부모들과 "아이들이 원하는거 최대한 해주고 싶어요" 라는 부모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난 그게 아무래도 좀 어렵다. 굳이 나의 포지션을 말하면, "너네가 원하는 거 최대한 해줄께. 대신 아빠도 잠깐씩 아빠 취향대로 살래." 정도다. 숨구멍은 필요하다.
와이프와 같이 간다면 가장 좋으련만, 둘이서 시간을 낼만큼 누군가에게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말로 혼자 충만하게 채울 시간이 가끔은 필요하다. 나는 그게 필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첫째가 4살쯤부터 혼자 여행을 다니고 있다. 하루 이틀 정도 아내에게 온전히 부탁을 하고, 밤비행기를 타고, 공항에서 아침까지 노숙을 하고, 캡슐호텔에서 자고, 한국에 다시 새벽에 돌아오는, 1박 3일 또는 1박 4일의 형태.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을 채운다. 내 할일을 뒤로 미루고 간다는 데에 대한 불편한 마음과 다녀와서의 집안일, 가족들 각자의 마음을 다시금 받아 채워야 하는 후폭풍은 좀 있지만.
아무튼, 6월에는 도쿄를 다녀왔다. 유류할증료가 무지 비싸져서 운행이라도 해야겠는지 0원에 가까운 운임에, 청주에서 하네다로 가는 항공권이 나왔다. 한참 쌀때보다야 비싸지만, 감지덕지한 가격이다. 1주일 전에 결제하고, 출발하는 당일 아침에 여행 일정을 짜고. 이번에는 새로 산 필름카메라와 함께 한다는 스스로의 합리화까지 함께하며.
태풍이 지나간 뒤의 도쿄는, '도쿄에도 이런 날씨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한 날씨였다. 처음 도쿄를 갔었던 10여년 전 한여름의 도쿄와는 달리, 20도 전후의 걷기 딱 좋은, 대체로 흐린 날씨. 가끔 보이는 맑은 하늘은 그저 푸르렀고, 가고 싶은, 보고 싶은 곳들을 발 닿는대로 걸어다녔다.
도쿄에는 재즈바가 참 많았다. 재즈 킷사도, 공연을 하던 바도, 아무튼, 취미생활을 하기에는 도쿄만큼 좋은 대도시는 찾기 힘들다. 평일 아침에 신주쿠 중심가의 한 재즈바에서 하는 정기 공연에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오는 건, 그리고 그 자리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다양하다는 건,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 자리를 만드는 사람과 찾는 사람들 모두, 그 자리를 길게 이어나가는 사람들이었다.
순간을 있는 그대로 담고 싶었다. 필름 카메라와 함께 하면서, 모든 순간을 담을 수는 없고, 결국 담게 되는 순간도 전체일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때, 나만이 느꼈던 내 시선을 깊이 고민해서 담고, 그 결과물이 어떨지 시간이 지난 뒤에 확인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인 것 같다. 여행 내내 찍었던 두 롤은, 꽤나 고민하면서 담았지만, 역시나 마음에 드는 건 고민없이 담았던 사진들이다.
카메라와 함께 하는 경험은 새로웠다. 여행의 타임라인을 느낄 수 있는 스마트폰 카메라의 '기록으로서의 사진'은 없지만, 내가 인상깊게 느꼈던 순간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사진들이 남았다. 2롤, 72장의 사진들.
다녀오고 느낀 거지만, 나는 대도시형 인간은 아니다. 도쿄의 분주한 중심가보다는 작고 한적한 길거리가, 유명하고 수만 개의 리뷰가 달려있을 것 같은 상점들보다는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갖춘 길거리 안의 작은 서점에 마음이 끌렸다. 여행 전 읽었던 독립서점 주인의 책을 보고, 'title' 서점에는, 지나가다 들른 어르신 분들, 그리고 그만의 구성으로 갖춰둔 작은 공간이 기억에 남는다.
'작은 목소리, 빛나는 책장' 의 그 곳
그 결과는 다르지만, 오다이바의 해변공원이 주는 느낌이 기억에 남는다. 내게는 소중한 추억이 담겨있는 공간은, 인위적일지라도 그때의 시간으로 나를 돌아가게 만들었다. 날씨도, 동반인도, 나 자신도 그때와는 많이 달랐지만, 그때 그 공간에서의 질감은 그대로였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그리움과 씁쓸함 사이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다른 이들의 시선, 무게를 내려놓으며 진짜 나를 발견하는 건, 가능한걸까. 육아를 하면서 간절해지며, 동시에 희미해져 가는 나라는 자아의 의미에 대해. 이번 도쿄 여행이 내게 준 숙제다.
어디서나 아이를 본다는건, 어느 정도의 무게 그 이상이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