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하지 않는 삶에 대하여
반동형성이라는 방어기제를 통해, 타인과 나 자신의 어두운 면을 직시하는 것에 대해
'반동형성' 이라는 심리학의 키워드가 있다.
반동형성(反動形成, reaction formation)이란, 불안을 유발하거나 수용되지 못할 감정 혹은 욕구 충동에 대하여, 그것과 정반대되는 경향을 과장되게 만들어냄으로써 이를 억제하는 방어기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이에 따른 행동은 부자연스럽고 어색하다는 인상을 낳는다. 반동형성은 신경증적 방어기제(neurotic defense mechanism) 3단계(Level 3)에 속하는데, 여기에는 해리(dissociation), 전위(displacement), 주지화(intellectualization), 억압(repression)이 포함된다. -wikipedia
쉽게 이해하자면,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일 수록, 알고 보면 '그런 사람'인 욕구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나는 세상에서 돈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라고 말하는 사람일수록 "나는 돈이 정말 중요하지만 아니라고 생각할래" 라는 무의식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보는거다. 쉽게 말하면 일종의 방어기제다.
요새 몇몇 유명인들의 과거 행적이 까발려지면서, 그 사람들의 과거 발언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너무나 이성적으로 '자신은 인권을 지키는 데에 무엇보다 깨어있다' 고 말하던 사람은, 알고 보면 예전에 그 인권을 유린하는 범죄를 저질렀던 적이 있었다. 마치 자신의 깨시민적인 이성으로 가르치는 태도로, 어찌보면 내려다 보는 태도로 말하더니만.
어이가 없다. 동시에, 내 안에 그런 모습은 없었나 돌아본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걸 바라볼 용기가 필요하다. 내게 중요한건 '이거야' 라고 말하지만, 그 안에서는 내 안의 자기 방어적인 기제가 작성하고 있는 걸 수도 있다. 인간은 이성과 본능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처럼, 어느 한쪽만 우세한 삶이라는 것은 온전히 살아간다고 할 수 없는 거다.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본다. 바른 행동, 옳은 삶이라고 생각하며 했던 수많은 선언들을 돌아본다. 그 안에는 부끄러웠던 나의 본능적인 치부들이 들어있다. 이제는 그래서 어떠한 얘기도 단언하지 않고자 한다. 요즘은 단언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나아가 이성의 거부감을 들게 하는 본능적인 표현들이 삶에 가까이 가있는거 같다.
이러한 '인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특히 이전 세대에 대한 빚을 말한다. 자신들의 조상이 이로 인해 덕을 봤으니,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논리다. 역시나 본능적인 자기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지껄이는 소리다. 내가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고 타인을 돕겠다고 하는 사람은 둘 중 하나다. '현자' 거나, '가짜'다. 더럽다. 심지어 어느정도 위치에 자신의 기득권으로 올라가놓고서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덮기 위해 깨시민인 척 한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자기가 거기까지 올라갔으니 이제 반대편에 사다리를 내려줘야 한다고 한다. 정-반-합. 다시, 정-반-합. 어쩌면 자신의 알량한 도덕적 부채를 해소하고자 미래 세대의 괴물들을 매일 만들고 있다.
과거의 죄를 속죄하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공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럴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면 저렇게 행동하지도 않을거다. 저런 사람들이 위로, 위로 올라가는 사회인 것이 안타깝고, 그렇게 위로 올라간 사람들의 얘기만 듣고 있는 구조가 절망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