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제로였다 - 오에 겐자부로 '개인적인 체험'
배배 꼬이는 난해한 글 속에서 만난 한 인간의 날것의 고뇌와, 도피할 수 없는 삶 앞에서 내린 결심에 대하여.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자전적 소설 '개인적인 체험'
읽기 전
한달에 한번씩 하는 독서토론은, 내가 혼자이면 접해볼 엄두를 잘 내지 않는 책들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유독 일본 작가들의 책은 마주하기가 꺼려진다. 그 특유의 난해한 문체들 때문인것 같기도 하다. 이번 달에 만난 책은 2명의 일본인 노벨문학상 수상자 중 한명인,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적인 체험' 이다.
일단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책은 조금 달리 보인다. 상을 받지 못한 작가의 글이 좋지 않다는 건 아니어도, 적어도 상을 받은 작가의 책은 한번쯤은 읽어보면 좋을거라는 의미 정도는 부여해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아직까지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책을 읽은 시간을 아깝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시적인 힘으로 생명과 신화가 밀접하게 응축된 상상의 세계를 창조하여 현대에서의 인간이 살아가는 고통스러운 양상을 극명하게 그려냈다. -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
줄거리
'개인적인 체험' 은 한때 유망한 대학원생이던 주인공 '버드'가 막 태어난 자신의 아들의 머리가 기형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이야기다. 1963년에 작가의 아들이 실제로 기형으로 태어났고, 그걸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인 이 책이 1964년에 출간되었다.
중중 장애아를 둔 아버지가 내적 변화, 성장을 통해서 비극을 극복하고 공생과 화해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 장편소설. 27세의 학원 강사 버드는 결혼한 후 아기가 생기지만 아프리카로의 모험 여행을 꿈꾸는 부동(浮動)하는 젊음이다. 태어난 아기가 뇌 손상을 가진 장애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일체의 행동의 자유를 빼앗긴 현실에 절망하고, 아기에 대한 책임감에서 벗어나려 술과 옛 여자친구 히미코에 집착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데...... 『개인적인 체험』은 지적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의 죽음을 원하는 청년의 영혼 편력, 절망과 일탈의 나날을 그리고 있다. 출구 없는 현실에 놓인 현대인에게 재생의 희망은 있는지 물음을 던지는 오에 겐자부로의 수작(秀作)이다. 이 작품은 오에의 인생과 작품 세계에 전환점이 되었으며 그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출처 : 예스24
배배 꼬이는 글, 마음
작은 서평, 줄거리 안내가 책에 선입견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이 책도 아무 사전정보 없이 읽었다. 그리고, 읽으면서 속이 느글거렸다. 도대체 이 작가는 어떤 얘기를 하려고 이렇게까지 역겹게, 꼬이게 말할까. 왜 이렇게 읽으면서 내 속이 배배 꼬일까. 이 모든 것이 작가 스스로의 얘기라는 걸 이해하고 나서야 알게됐다.
이 책의 글은 읽기 그야말로 난해하다. 도저히 한 문장을 온전히 내 것으로 들일 수가 없다. 이렇게까지 한줄한줄 꼬여있는 글은 어떻게 하면 쓸 수 있을까 싶다. 읽으면서 내게 들어오는 듯 튕겨나가는 글들이 불편했다. 주인공 '버드'의 심리상태와 같다. 언제나 도피하고 싶고, 중요한 걸 보지 않으려 하는, 영원히 책임지는 것을 불편해 하는 '버드'.
술, 아프리카. 삶으로부터의 도피
술에 그토록 집착했던 모습도 너무도 잘 이해가 됐다. 애주가로서, 힘든 순간에 술이 주는 위안이 분명 있다. 하지만 술은 결국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도피처일 뿐이다. 절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되어주지 못한다. 아프리카라는, 머나먼 공간에 집착하는 것 또한 도피하고 싶은 버드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나 하나는 인생에서 영원히 도피할 수 있지만, 내가 만들어낸 피조물, 나의 아이는 그럴 수 없다. 우리는 언제나 도피하면서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스토너' 소설 속 주인공과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어떤 일에는 선택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쾌락의 결과물이든, 그리지 못한 불가피한 낙서든지.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역겨운 모습이 있다. 내 안에는 수많은 층위의 내가 있다. 그 안에서의 다양한 모순된 욕망의 모습을 누군가에게 있는 그대로 보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작가는 이 주인공이 자신의 분신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 인간의 솔직한 욕망을 남김없이 드러냈다. 내 아이가 자연스럽게 죽었으면 좋겠다는 그릇된 욕망을, 본인이 가지고 있는 성적인 열망을.
그 과정에서 충돌하는 많은 내 안의 자아들을 솔직히 보여주는 이 소설의 방식이야말로, 정제된 깔끔한 서사만큼이나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인간의 생각이야 말로 불합리의 끝판왕이다. 저녁에 '오늘은 술 안마셔야지' 라고 선언한 글을 새벽에 취한 상태에서 다시 보는게 인간이다.
히미코 : 폭력에 대한 통찰
'히미코' 는 주인공 '버드'의 밑바닥을 드러내주는 인물이다. 힘이 약하단 이유로 지나가던 젊은이들에게 폭력을 당한 버드는, 자신이 히미코에게 한 행동이 폭력이었다는 사실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의도가 없어도 타인에게는 평생 가슴에 남을 폭력이 될 수도 있구나'. 우리도 살다보면 나쁜 의도로 하지 않은 말이 누군가에겐 평생을 안고가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 그러한 사실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담겨있다.
"버드, 공포심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정확히 한정함으로써 공포심을 고립시켜야만 하는 거야." -히미코
답은 제로였다
그 과정에서 '나'라는 자아를 지키려는 시도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버드는 깨우치게 되고, 그 전까지 '나'라는 실체없는 자아를 지키기 위해 내 삶에서 지워버리고자 했던 그 아픈 아이를 거두기로 한다. 마지막에 버드는 이러한 결심을 하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어색한 흐름의 전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중간에 히미코가 말하던 '다원적 우주론'(단지 여러 우주 중에 하나에 서있는 것) 이라고 본다면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있다.
나는 아기 괴물에게서 수치스러운 짓들을 무수히 거듭하여 도망치면서 도대체 무엇을 지키려 했던 것일까? 대체 어떤 나 자신을 지켜 내겠다고 시도한 것일까? 하고 버드는 생각했다. 그리고 문득 기가 막혔다. 답은 제로였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치밀하게 등장인물들을 배치한다.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이러한 등장이 너무 갑작스럽다고 느꼈는데, 다 읽고 책의 내용을 되짚어 보면 버드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자연스럽게 인물들을 배치해가며 얘기를 얹어가는지가 느껴진다. 그래서, 처음 읽을때의 물음표는 느낌표로 바뀌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독서토론까지 마치고 나니, 이 작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졌다. 책을 읽으면 자연스레 그 뒤에서 글을 쓰는 작가가 보인다. 오에 겐자부로는,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날것 그대로 보여줬다. 그리고 자신에게 다가온 그 무거운 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했고, 그 결심의 과정들은 '개인적인 체험'의 책의 흐름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개인적인 체험은 모두의 체험이 된다
'개인적인 체험'은 그의 인생을 바꾼 터닝포인트의 시점을 있는 그대로 모두 드러내 보였다. 그 이후로 오에 겐자부로는 평생을 장애가 있는 아들을 돌봤고, 이 책의 결말에서 내가 느꼈던 그 삶에 대한 다짐을 평생을 지켜가며 살았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삶의 태도를 견지했고, 그릇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타협하지 않았다.

오에 겐자부로와 그의 아들 히카리. 이름의 뜻은 '빛'이라고 한다
'개인적인 체험' 이라고 하지만, 이 개인적인 체험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이상 깊이의 개인적인 체험은 결국은 모두의 체험이 된다. 이를, 오에 겐자부로는 너무도 잘 전달했다. 그가 평생 지켜낸 그 무거운 다짐을 나 또한 나의 일상에서 곱씹어보고 싶다. 그의 대표작 '만엔 원년의 풋볼' 을 바로 읽어봐야겠다.
이 책의 YES24 제휴 링크를 공유합니다.
이 링크를 통한 구매로 작은 수수료를 받고 있으며, 더 좋은 콘텐츠 작성에 도움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