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노트|2026.09.14

지나가는 여름을 바라보며

더위를 유독 못 견디는 내게, 여름이란 매년 버텨내는 계절이며, 동시에 다 버텨내고 나면 어김없이 아쉬워지는 계절이다. 토베 얀손의 '여름의 책'과 함께, 절정을 지나는 시간과 내려놓아야 할 것들에 대해. 2026년의 혹독한 여름에게 건네는 인사

지나가는 여름을 바라보며

블로그를 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훨씬, 더 부지런해야 하는 일 같다. 하루의 얼마만큼의 시간을 내서 글을 써야하고, 그 글을 다듬어야 하고, 업로드를 해야한다. 네이버 블로그 같이 등록버튼 하나로 끝나지 않는, 내 나름의 독립적인 공간에 포스팅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번거로운 과정들이 있다.

뭔가 재미있는 얘기, 하고 싶던 얘기들이 없던 건 아니었다. 즐겁고 어려운 일들로 빡빡한 여름을 지나왔다. 여느 여름보다 유독 혹독하게 더웠던 이번 여름. 지루하게 온도가 낮아지기를 기다리며 하루하루 버티고, 견디고, 그러다 답답해서 물놀이를 가고(보통 부모들은 같이 즐기기보단 시중을 들지만), 지쳐서 돌아와서 쓰러지면 다시 새로운 하루의 시작이다.

또 다시 지나간 여름을 보며

그렇게 쉴틈없이 하루하루를 견디다 어느 순간 돌아보면, 어느새 밤낮으로 에어컨을 틀지 않고, 자연스럽게 아침에 창문을 열게 되는 아침이 온다. 이번 여름도 지나갔음을 알리는 시그널이다.

인스타에 뭔가를 올리고 싶을 때는, 평소와는 좀 다른 걸 한다던지, 평소의 단조로운 삶에서 벗어났다는 자각이 들 때가 많다. 그래서, 시원해진 어느 아침, 피드를 올릴까 스토리를 올릴까 고민하다가, 작년에도, 그 작년에도 '그 길던 여름이 지나갔다' 류의 포스팅을 올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몇년 전 올린 그 포스팅, 아무도 신경 안쓰지만, 나는 왠지 했던 얘기를 반복하는 사람이 된것 같았다. 고민하다 이내 혼자 마음으로 생각한다. 여름이 지나갔구나.

계절상품이라 불리던 시절

여름은 참 신기한 계절이다. 더운 걸 참 못참는다. 오죽하면 학창시절 친구들은 나를 '계절상품' 이라고 불렀었다. 정말 더웠던 대학생 시절의 여름, 함께 놀러갔던 친구에게 긁혔던 말은 "더위는 마음의 문제다." 라는 말이었다. 난 이렇게 더운데, 어떻게 그게 마음의 문제라는 말인지. 타인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나온 표현이라고 지금 들었으면 웃어넘겼겠지만, 그 때는 관계를 다시금 재정립할 정도로 마음에 박힌 말이었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 입고있던 옷, 그때의 공기가 느껴질 정도면 말 다했다.

여름이 시작할 즈음부터 이미 걱정으로 시작한다. 여름의 한가운데를 통과할 때는,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 의의를 두곤 한다. 작은 부딪힘 하나에도 아주 예민해지는 데다가, 아이들을 키울 때의 인내심은 다른 계절에 비해서 한 절반은 되려나. 주변 사람들에게도 여유로운 마음 같은걸 내기가 참 어려운, 고슴도치가 된다.

절정을 지나가는 즈음

아이러니하게도 여름이 조금씩 힘이 빠지기 시작하면, 마음이 놓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나가는 시간이 아쉽다. 모든 것들이 푸르고 에너지로 가득한 시간을 지나, 이제는 점점 줄어들고, 쪼그라들 계절의 흐름이 머지 않았다는게, 절정의 순간을 지난 듯이 느껴진다.

심지어 더운 날에도 가끔은 이불을 덮고 자기도 하는 나의 변화를 느끼다보면, 계절상품이라 불리던 때가 언제였나 싶다. 내 인생 또한 절정을 지난 초가을쯤 어디로 가고 있는건 아닌가 싶다. 영원할 줄 알았던 뜨거웠던 시간들도 이제는 내 것이 당연하지 않음을 피부로 느끼는 순간. 내 삶의 열정보다 더 소중한 그 무언가가 생겨나고, 그것을 위해 나라는 존재를 내려놓아야만 하는 순간.

소피아와 할머니, 어느 섬의 여름

이 여름에 지쳐,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알아봤고, 첫째와 핀란드를 거치는 가을의 여행을 충동적으로 결정했다. 여행가는 곳의 책을 읽고 가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핀란드를 대표하는 '무민' 캐릭터의 작가, 토베 얀손의 '여름의 책'을 읽었다. 소피아와 그의 할머니가 함께 보낸 어느 여름의 어느 섬에서의 이야기들. 현실같기도 하고, 마법같기도 한 그 어느 사이의 책이었다.

짧지만 긴 여운을 남겨준, 핀란드의 한 섬 이야기.

인생을 정리하고 있는 할머니와 이제 막 세상을 알아가는 어린 소피아가 같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참 다르다. 서로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아닌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언젠가 소피아도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많은 것들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복잡미묘한 시선에 마음이 끌렸다. 짧은 책이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그 책을, 여행을 떠나기 전 한참을 잡고 있었다.

여름날

그렇게 우리 인생도 계절처럼 지나가고 있다. 여름이 소중한 건, 여름이 지나고 나서라는 그 점이, 사무친다. 그때 영원할 것처럼 곁에 있어 흘려보냈던 수많은 여름날들을. 그래서, 다가오는 가을에는 이 계절을 좀 더 소중하게 담을 수 있는 내가 되어보려, 애를 써본다.

언제나 여름이 끝나갈 즈음 듣는 노래. 이미 인스타에 올렸었지만, 또 이맘때가 되면 생각나는, 내 지나간 여름에 보내는 노래. '유희열 - 여름날' 과 함께, 참 더웠던 2026년의 여름과도, 작별인사를 건네어 본다. 다시 한국에 돌아가면, 이제는 완연한 가을이 되어 있겠지. 그때는, 돌아가서 옷을 정리해야 겠다.

YouTube Video

어느새 계절은 이렇게
내 여름날과 함께 저물고
시원한 바람 그 속엔 내일 또 내일

너도 가끔 기억을 할까
눈부시게 반짝 거리던
푸르른 지난 여름날 우리들

— 유희열 「여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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