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2026.01.28

상처는 새로 돋는 살의 전제 조건, <위저드 베이커리>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를 읽고 쓴 독서노트. 청소년의 상처와 성장, 그리고 있는 그대로 안아주되 책임을 함께하는 어른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본다.

상처는 새로 돋는 살의 전제 조건, <위저드 베이커리>

상처는 새로 돋는 살의 전제 조건, <위저드 베이커리>

프롤로그: 휘발되지 않는 기록을 위하여

블로그에 쓰는 사실상의 첫 글이다. 책을 읽는 걸 좋아하고 나누고 싶은데 그러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리고 책의 내용을 이렇게 적지 않으면 금세 휘발되어 버린다고 느끼기도 해서, 깊이 마음을 지나간 책들의 후기를 써보려고 한다. 그 첫 책은 바로 '위저드 베이커리'이다.

삶이 어려워진 순간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책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고맙게도 마주칠 수 있게 되었다. 책이라는 건 깊이 읽으려면 읽을수록 내 안의 나를 끊임없이 마주치게 된다. 그래서 얘기를 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내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게 된다.

인연: '거친 결'이 닮은 당신에게

그렇게 독서모임을 통해 가깝게 알게 된 분이 있다. 그런 내 모습을 부끄럽지 않게 드러낼 수 있을 것 같은 분. 살아온 삶은 다르지만 그 거친 결은 비슷하신 분께서, '선생님이라면 이 책의 깊은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거다' 라고 하셔서 읽게 된 책이다. 개정판도 있다고 하는데, 구판이 좀 더 강렬하다고 하여 구판을 구해 읽었다. 다 읽고 나니 개정판도 한번 읽어봐야 겠다 싶다.

줄거리: 마법의 빵집 뒤에 숨겨진 서늘한 진실

말을 더듬는 열여섯 살 소년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재혼한 아버지와 새어머니, 의붓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새어머니인 배 선생과 갈등을 겪으며 힘들어하던 ‘나’는 여동생인 무희를 성추행했다는 누명을 쓰고 집에서 도망쳐 나와, 평소 끼니를 해결하고자 자주 들른 ‘위저드 베이커리’에 숨어든다. 급한 마음에 단골 빵집으로 뛰어든 소년이 마주한 것은 놀라운 마법의 세계. 평범한 빵집인 줄로만 알았던 그곳은 사람들의 소원을 이루어 주는 특별한 빵을 만드는 마법사의 베이커리였던 것이다.
위저드 베이커리에 머물게 된 소년은 자신의 욕망에 따라 마법의 힘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싶어 하는 인간들의 행태를 목격한다. 또한 빵을 만드는 마법사 점장과 그를 돕는 파랑새에게서 따끔한 충고를 듣기도 하고, 때로는 가족에게서 느껴 본 적 없는 위안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위저드 베이커리에 대한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면서,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는데…….

청소년 소설이라고 들었지만, 그 표현은 결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청소년의 평범한 얘기가 아니다.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사실 청소년이라는 단어로 정의하지만, 한꺼풀 벗겨 보면 (매우 특이한 케이스긴 하지만) 어딘가에는 분명 있을 법한 얘기다.

평균이라는 폭력

우리는 너무 쉽게 평균을 정의한다. '청소년들의 모습은 이래야돼' 라던지, '이런건 부적절한 표현이야' 라던지. 그 과정에서 청소년들의 뾰족함과 그들만의 색깔은 쉬이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읽는다. 지극히 흔들리며 자라나야 할 청소년들의 삶을, 지레 어른들의 편의를 위해서 말이다.

이 책에서 주인공 '나'는 평탄치 않은 삶을 산다. 말을 더듬는데다가, 성추행을 했다는 누명에, 어머니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그 와중에 만난 새엄마는 자신의 딸을 재단하고 그 방식으로 '나'를 재단한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그런 불행함이 '나'의 가장 큰 불행은 아니다. '나'의 가장 큰 불행은, 나를 있는 그대로 안아주는 존재의 부재다.

아버지는 나에게 별 관심이 없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애정이 없는거다. 자살한 친엄마는 또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나'는 그 엄마의 버림의 차가움보다도, 그때 내게 준 그 빵의 따뜻함을 기억하고 있다. 새엄마는 말할 것도 없이 나에게 대놓고 질투심을 내비치고, 나를 도구처럼 취급한다. 어쩌면 그 사건으로 집을 뛰쳐나온것도 언젠가는 터졌어야 할 일이었겠지.

점장의 철학

그때 황급히 들어갔던 '위저드 베이커리'는 아무런 이유를 묻지 않고 나를 숨겨주고 도와준다. 지금까지 타인에 의해 살아왔던 유년기를 지나,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청소년기에는 그 모든 기준들에 혼란을 가지게 된다. 나도 내가 누군지, 왜 이렇게 사는지를 모르며 방황할 때는 그저 판단없이 나를 따뜻하게 품어줄 사람을 갈망한다. 점장은 그런 사람이었다. 아픈 나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안아주는 사람.

하지만 이 책이 좋았던 지점은, 바로 그 점장의 태도, 또는 철학이었다. 절대 쉬운 해결책을 주지 않는다.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마법의 빵을 팔면서도, 그로 인해 세상이 뒤틀리고 원하지 않는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지도록 한다. 뭐든지 도와준다는 그런 어른이 아닌, 너의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는 그런 어른이 말이다.

그러한 어른을 위해 몽마에게 꿈을 내어주고, 보고싶지 않았던 끔찍한 장면들을 본다. 그 또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일테다. 나의 과거를 회피하지 않고 온전히 바라봐야 한다. 거기서부터 누군가의 개입이 닿지 않은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렇게 꿈 속에서 내 목소리가 나오고, 얻어터졌지만, 끝내 얼굴을 감싸거나 저항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로 인해 꿈에서 깬 뒤 점장에게 혼나지만, 점장은 그동안 내게서 떠나갔던 어른들과 다르게 내게로 다가왔고, '나'는 마음 기댈 곳을 찾은채 펑펑 운다.

상처는 새로 돋는 살의 전제 조건. p.157

순간의 긴장이 풀리자 뜻밖의 눈물이 찔끔 제멋대로 새어 나왔다. 학교 선생이, 또는 배 선생이 내게 똑같은 일을 했을 때 나는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회피나 분노, 억울함 아니면 냉소, 나의 마음은 그런 것들로 채워져 지금과 같은 감정에 자리를 내줄 틈이 없지 않았던가. 누군가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데에서 오는 아픔에. p.162

상처와 살: 과거를 마주해야 비로소 돋아나는 새 살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던 어린이를 지나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지만, 그렇다고 모든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어른은 아닌 청소년 시기. 이 시기는 커버린 몸과 머리와, 아직은 모든걸 책임지기는 힘든 그 사이에 존재한다. 하지만, 결국 온전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어린시절을 직면하고, 스스로 발걸음을 딛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너의 흔들림을 모두 이해한다고 안아주며, 동시에 너 스스로 일어설 힘을 찾아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해줄 어른이 있었다면, 나의 어렸던 시절은 조금 덜 흔들렸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직은 성인이 아닌 그 언젠가에 끼인 시기에는 그런 어른들의 도움이 분명히 필요하다. 아이에게 손찌검을 했지만, 그 점장에게서 받는 위로는 너무도 큰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소중하다. 이 책의 표현들이 거북하다며 이 책을 평가절하하는 이들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히 이 책은 그러한 잔혹함만 있는 책은 아니다. 잔혹하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굳센 지지, 그리고 따뜻함. 그 본질을 느낄 수 있는 흔들리는 청소년들에게 이 책은 그 어떤 달콤한 말보다도 굳센 위로가 되어줄 거다.

그리고 이미 그 흔들리며 스스로를 찾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어른들에게도 이 책은 위로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오로지 회피하고만 싶던 현실을 올바로 바라봐야만 하고, 그리고 온전히 너의 잘못이 아니었던 그 시절에 대해 위로해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Y의 경우든, N의 경우든, '나'는 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의 아팠던 시절은 어떤 방식으로든 앞으로 '나'의 삶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다고 위로해주는 듯 하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감정은 어째서, 뜨거운 물에 닿은 소금처럼 녹아 사라질 수 없는 걸까.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참치 통조림만도 못한 주제에. 그러다 문득 소금이란 다만 녹을 뿐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어떤 강제와 분리가 없다면 언제고 언제까지고 그 안에서. p. 185

냉정한듯 하지만 곁에 있어주는 한결같음.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었을 때 같이 읽으며 얘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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