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노트|2026.02.06

시절인연에 관하여 - 우리는 왜 그토록 서로를 원했다가도 남이 될까

영원할 것 같던 관계가 멀어지는 이유를 '시절인연'의 의미로 생각해봅니다. 자책 대신 그 순간의 진심을 긍정하며, 억지로 쥐고 있던 마음을 놓아주는, 권순관의 음악과 함께하는 끄적임.

시절인연에 관하여 - 우리는 왜 그토록 서로를 원했다가도 남이 될까

사진: UnsplashChaojie Ni

시절인연(時節因緣). 불교에서 나온 용어다.

시절인연은 모든 일이 적절하거나 결정적인 때가 되어야 이루어짐을 뜻하는 불교 용어이다. 이는 씨앗이 시간의 경과를 통해 싹을 틔우듯이, 종교적 성취를 포함한 일련의 행위도 때가 되어야 그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전적 의미는 이러하다. 단어의 뜻 자체는 긍정적인 의미를 좀 더 내포하고 있는 듯 하다. 우리가 살아가며 쓸 때는 이보다는 좀 더 개인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한다. 특정인과의 소중했던 인연이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멀어진다든지, 아니면 '그 때'를 놓쳤다는 느낌이 들 때 주로 많이 사용하는 거 같다.

사람과의 인연은 참 알 수가 없다. 어떤 순간에는 서로가 없으면 안될 사이처럼 삶을 공유하며, '우리는 영원한 인연인거 같아', '오랫동안 함께했음 좋겠다'는 말을 죄책감없이 내뱉는다. 그 말들 자체가 의미없는 단어가 될 수도 있음을 전혀 예상치 않는 사람들처럼.

하지만 그랬던 인연들도 각자의 삶의 궤도가 달라지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멀어지기도 하고, 또 멀어져서 놓아버려야 하나 싶던 순간 어떤 인연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인생의 재밌는 점일텐데, 그렇게 애타게 간절히 원했던 연들은 시간이 지나서야 내게로 다가오고, 나는 이제는 그토록 상대를 원하지 않게 되어있곤 한다.

그야말로 두 사람의 삶의 궤도가 영원히 하나가 되는 그런 순간을 모든 삶의 순간에 바라곤 한다. 하지만 그 순간은 없거나, 있다 한들 너무도 짧게 지나간다. 그렇기에 그 수많은 영화와 책에서 그 찰나의 순간을 그리지 않았을까. 노팅힐의 윌리엄 태커와 애나 스콧처럼, 이터널 선샤인의 조엘와 클레멘타인처럼.

얼마 전 내 마음이 결핍으로 가득찼던 때, 도움을 준 사람이 있었다. 나를 위해 모든 것들을 내줄것만 같았던 그분의 에너지에, 주저앉아 있던 나는 도움을 받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 때 그와 나의 관계는 마치 '왜 이제서야 이런 사람을 만났을까' 싶었고, 나는 인생의 좋은 친구를 이렇게 만났구나 라는 감사함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나의 그 일시적이던 결핍이 어느정도 해소되고 소원해졌던 그와의 관계가 다시 이어진 일이 있었다. 나를 일으켰던 그의 에너지는, 이제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만을 던져주는 과잉처럼 여겨지게 됐다. 차분함을 유지하고 싶은 나의 마음에 원치 않는 돌을 던지는 사람이 바로 그가 된 것이다.

얼마 전 내게 정말 큰 힘이 되어줬던 그 사람을 지금에 와 불편한 태도로 바라보는 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스스로가 너무 이기적인가 싶어 자책하기도 했고, 나 또한 상대가 어려울 때 그 어려움을 도와주는 것이 그 빚을 갚는게 아닐까 싶어 어떻게든 도와줄 게 없을까 한참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굳이 큰 죄책감이나 미안함을 가지고 살아야 할 건 없었다. 왜냐면, 그때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했고, 나는 도움을 받았던 거다. 이후의 삶에서 나는 스스로를 바꿔나갔고, 그 사람은 거기 그대로 서있다. 서로의 마음이 언제나 같을 수는 없는 거니까.

사람은 자연스럽게 변한다. '변하지 않는 사람' 이라는 말이 큰 미덕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하지만, 나는 사람은 상황에 따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통할 절대법칙 같은게 존재한다면야 인생을 바라보기 편하긴 하겠다. 하지만, 사소한 상처 하나에도 바뀌는 것이 인생인데, 하물며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는 우리는 언제나 바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래야 한다.

다만, 그 안에서 변하지 않고 생각했던 것이 하나 있다. '그 순간, 내 앞에 있는 너에게 최선을 다하자'.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는 같은 존재가 아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현재의 나 뿐이다. 내 앞에 있고,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 하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나를 살아가는 모토가 되고, 이정표가 된다.

그 사람에게도 그 당시에 최선을 다했느냐고 물어본다면, '그렇다' 고 얘기할 거다. 함께 있는 순간에 온전한 마음을 나누기 위해 노력했고, 진심으로 상대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걸 어떻게 느꼈는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때와 왜 달라졌냐고 묻는다면, 딱히 대답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다.

길지 않은 삶을 살며 주변 사람들에게 '변했다' 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예전에 내가 알던 너가 아니라는 말도. 그 말이 가시처럼 찔릴 때가 많았다. 내가 억울했던 건, 나는 그 당시에 함께 한 시간들을 있는 그대로 살았고, 사랑했다. 길고 가늘게 잇는 법을 잘 몰랐을 뿐이다.

이제는 그 말들을 이해하면서, 그저 억지로 놓지 못했던 마음들을 하나씩 풀어줘야겠다. 그렇게 순간을 살아왔던 내게, 시절인연이었던 그들에게 감사하며.

참 좋아하는 권순관 님의 노래 가사를 옮긴다. 삶에 대해 깊이 성찰하며 따뜻한 글을 만드는 분.

함께 보낸 여름은
햇빛 사이로
모든 게 빛나 보였고

길고 길던 계절에도
너의 인연도
모든 건 끝이 있더라

오 난 물결 속에서
팔을 휘저어봐도
오 나의 마음만으론
거센 흐름을 막을 수 없었네

누가 누구의 상처가 됐건
서로 각자의 시절에
더 할 수 없이 사랑을 했고
더 큰 세상 속을 향해가면 돼

어떤 의미였을까
서로 삶에 남은 건
왜 난 아름다울수록
뒷걸음질 치며 놓쳐버릴까

누가 누구의 아픔이 됐건
서로 각자의 시절에
더 할 수 없이 사랑을 했고
더 큰 세상 속을 향해가면 돼

쏟아지던 미소와
다려지지 않는 청춘이
생의 뒤편에

받아들일게 우리의 시간
영원에 닿진 못해도
더 할 수 없이 사랑을 했고
더 큰 세상 속을 향해가면 돼
각자의 세상을 향해가면 돼

— 권순관 「시절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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