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2026.02.08

하나 그리고 둘, 그 사이의 거리

타이베이의 모습, 그리고 4K 재개봉으로 다시 만난 <하나 그리고 둘> 감상평. 우리가 영원히 보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뒷모습에 대해, 끊어질 듯 이어지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다.

하나 그리고 둘, 그 사이의 거리

공항 탑승구에서 만난 타이베이

작년 말, 혼자만의 짧은 휴가로 대만 타이베이를 다녀왔다. 월요일 새벽에 도착해 수요일 저녁에 돌아오는 타이트한 일정. 일상에 치여서 많이 알아보지 못하고 느낌대로 다닐 수 밖에 없었다. 백지와도 같던 타이베이에 대한 느낌을 가장 먼저 채운건, 공항 탑승구 앞에서 노트북으로 보던 이 영화였다.

영화도 책도 한 자리에서 방해없이 읽는 걸 선호한다. 특히 영화는 더더욱 끊어서 보는걸 정말 싫어한다. 2시간 내외의 짧다면 짧은 시간동안 감독의 의도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한 호흡에 담는 것이 나름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행기 탑승과 같은 이벤트로 중간중간 끊겼지만, 이 영화는 그 끊어지는 순간조차 설레었다.

영화 속 길을 걷다

그렇게 공항에 내리자마자, 홀린듯이 영화속에 나온 타이베이의 곳곳을 직접 눈으로 보는 영광을 누렸다. 가족이 살던 아파트, 그들이 걷던 길거리, 양양이 다니던 학교까지. 관광지가 아닌 그 곳들을 직접 걸으며 타이베이를 좀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 세월의 변화는 있었지만 그 영화의 공기를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타이베이의 한 모습

타이베이의 한 모습
타이베이의 한 모습

영화 속 NJ 가족이 살던 아파트 단지, 그리고 팅팅이 사랑을 얻고, 잃던 고가도로. 공기는 그대로다.

타이베이라는 도시, 그리고 대만의 골목이 가진 독특한 느낌은 내가 이 영화에서 받았던 것과 꽤나 맞닿아 있었다. 언젠가 타이베이 여행에 대해서도 포스팅 해봐야겠다. 일본, 한국, 중국, 홍콩, 이 주변 나라들이 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영화에서 느꼈던 그 질감을 받았던 여행지였다.

타이베이의 한 모습
타이베이의 한 모습

타이베이 거리의 일상. 낯선 듯 익숙한 느낌을 받던, 맑은 하늘과 골목길에서

내게 타이베이는 '하나 그리고 둘' 이었다. 그렇게 내 인생의 영화 중 한 자리를 차지한 그 영화가 마침 재개봉까지 한다니! 그것도 4K로! 첫 느낌을 오랫동안 간직하자는 주의지만,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 같기도 해서 막을 내리기 전 막차로 극장에서 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2달 간격으로 두번을 본 영화는 처음이었다. 너무도 개인적인 감상이긴 하다.

내리기 전 관람 성공

늦게 알게 된 재개봉. 막차 관람 성공!

어긋남과 이어짐 사이에서

줄거리

8살 소년 양양은 아빠 NJ로부터 카메라를 선물 받는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그들의 뒷모습을 찍는 양양. 양양의 사진 속에는 사업이 위기에 빠진 시기에 30년 전 첫사랑을 다시 만나게 된 아빠 NJ, 외할머니가 사고로 쓰러진 뒤 슬픔에 빠져 집을 떠나있게 된 엄마 민민, 외할머니의 사고가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누나 팅팅 그리고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 영화를 보며,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이토록 일상의 언어로 이렇게 아름답게 정의할 수 있을까 싶었다. 영화는 특정한 결말을 향해 달려가지 않는다. 그저 한 사람과 다른 사람의 대화, 관계를 평범한 우리들의 단어들로 만들어 낸다. 그 과정에서 서로는 조금씩 서로를 오해하고, 영원히 메워질 수 없는 거리를 가지며 각자의 방식으로 걸어간다.

팅팅은 외할머니가 쓰러진 것과 아무 관계가 없을 수 있음에도 자신을 자책하며 살아간다. 민민은 자신의 어머니가 쓰러진 상황에서 자기의 삶을 돌아보며 깊은 굴 속으로 은둔한다. 양양은 어느 순간 짓굳게 장난치던 누나에게서 새로운 삶의 전기를 발견하고, NJ는 우연히 만난 첫사랑과의 시간에서 과거를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들의 얘기들은 모두가 자연스러우면서 자연스럽지 못하다. 이유는, 서로는 각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왜 나를 떠났냐며 울부짖는 첫사랑에게 NJ는 자신의 마음을 읽어주지 못했던 그 시간을 말한다. NJ가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말을, 상대는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말못할 이유로 그토록 매정하게 팅팅을 밀어낸 첫사랑의 마음을 팅팅은 영원히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영원히 알지 못할 서로의 마지막의 될지도 모를 순간

어쩌면 영원한 오해로 끝날지도 모를 둘의 순간

그렇게 우리는 앞모습만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우리의 뒷모습을 바라보지 못한다. 자기 스스로의 삶을 3인칭 화법으로 언제나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 내가 보는 나의 모습은 언제나 불완전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영화는 조금씩 어긋나는 상호간의 대화의 찰나를 이렇게 삶의 언어로 자연스럽게 얘기하고 있다.

영화에서도 그러한 장면들을 계속 보여준다. 엉망이 되어버린 아이 돌잔치를 마치고 돌아온 삼촌의 이제 모두 끝났다는 말, 앞집 엄마의 슬픈 얼굴을 보려고 기웃거리는 양양을 나무라는 NJ.. 이외의 영화의 많은 장면들은 하나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다중성을 담고 있다.

나는 앞을 보고 싶었을 뿐인데

그리고 그러한 다층은 공간을 넘어 시간에서도 나에게서, 내 자식에게로 연결되고 있다. 내가 느낀 이 영화의 흐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바로 NJ와 첫사랑의 30년만의 만남, 그리고 그 NJ의 딸 팅팅의 첫사랑이 시작되는 장면을 교차로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어쩌면 첫사랑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레임, 그리고 첫사랑이기 때문에 남는 후회. 떨어져 있는 공간에서 그렇게 삶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누나에게 받은 첫 이성적인 느낌을 신비롭게 여기는 8살 양양에게까지. 그렇게 영화 속에서는 누군가의 죽음, 끝과 새로운 생명, 시작을 교차해서 배치시킨다. 삶은 계속 반복되는 것이라고.

NJ와 팅팅의 첫사랑은, 오랜 공간과 시간을 넘어 이어져 있다.

'하나(一)'와 '하나(一)'는 왜 '둘(二)'이 되지 못할까

영화에서 이 양양이라는 존재는, (팅팅을 제외하고) 어른이 되어버린 인물들에게 각각 시선의 부족함을 일깨워주는 존재다. 양양은 아빠 NJ에게 카메라를 받는다. 선생님에게 혼나며, 보지도 않은 걸 믿는 어른들에 대해 생각하며 엄마 민민에게 모기를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 필름을 모두 쓴다. 또 사람은 영원히 자신의 뒷모습을 보지 못한다는 얘기를 아빠 NJ와 하며, 그 뒤로 친구, 어른들의 뒷모습을 카메라로 담는다. 영화 내내 자신의 허황됨을 바라보지 못하는 삼촌의 뒷모습도, 그래서 찍는다.

누군가의 뒷모습만을 찍는 양양

우리는 영원히 자신의 뒷모습을 바라보지 못한채 살아가며, 진실의 절반만을 본다. 그러한 어른들의 모든 걸 안다는 착각을 양양을 통해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돌아가신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양양은 얘기한다. 나는 많은 걸 알지 못한다고. 하지만, 그런 양양이 어쩌면 삶을 가장 잘 아는 존재가 아닐까?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존재로.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NJ가 도쿄 출장 겸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장면이었다. 전반적으로 차분한 결의 영화에서 유일하게 어두운 밤을 빠르게 지나가는 그 장면은 마치 과거로 돌아가는 NJ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만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그 장면에서 나온 배경음악을 다시 듣고 싶은데, 도저히 찾을 길이 없다. (One More Moon - Kai-Li Peng으로, 전곡이 있는건 없는거 같고, 아래와 같이 일부 크롭된 부분만 들을 수 있다.)

역동적인 움직임, 그리고 과거로 향하는 도쿄의 밤

YouTube Video
youtube.com
https://www.youtube.com/watch?v=bByDIX4gEds
링크 보기 →

이 영화의 원제는 Yi, Yi. '一一' 다. '一' 하나, 그리고 그 하나가 둘이 되면 '二' 가 된다. 그 하나와 하나는 영원히 서로를 바라보며 둘을 만들지만, 닿을 수 없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그렇게 닿을 듯 닿지 않는 관계 속에서 오해와 이해를 오가며 지내는 것일테다.

조금 긴 러닝타임이지만, 끊어질 듯 이어지는 얘기들은 잔잔한 파도가 이어지듯 마음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내게는 영원히 기억될 영화가 되었다. 재개봉으로 만날 수 있어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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