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과거를 끌어안고 노를 젓는 일 - '오디세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오디세이'를 개봉 첫날 관람했다. 감독의 장치를 분석하며 보던 오래된 습관이 무의미해질 만큼의 몰입감, 그리고 3000년 전 오딧세우스의 부끄러움과 귀향이 지금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크레딧이 올라가도 일어서고 싶지 않았던 첫 경험의 기록.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새 영화, 오디세이를 보고 왔다. 개봉 첫날에. 놀란 감독이야 현존하는 헐리우드의 감독들 중에 최상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미학적인 부분과 영화 자체의 재미 두 마리 토끼를 참 잘 잡는 감독이기에, 이 감독의 작품이라면 어떤 형태로도 실망하지 않을 거란 걸 믿으며 당일에 관람을 하러 갔다. 평일 낮 시간임에도 매진에 가깝게 사람이 들어오는 걸 보며, 나 같은 사람이 많았구나 싶었다.

개봉 당일에 갔더니 이런 선물도 주는구나!
오디세이는 서양권에서는 학교에서도 많이 배우는,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그리스 로마신화에 무지한 나는, 오디세이가 어떤 얘기인지를 영화관 들어가기 전에 엘베에서 찾아봤을 정도로, 사전지식이 없었다. 줄거리도 몰랐고, 굳이 알았다면 미모의 금발이라고 알려진 헬레네 역할을 흑인배우가 하면서 PC 논란이 있었다는 정도?
예고편도 보지 않는 관객
하지만 나는 원래도 영화 보기 전에 예고편을 보는 것조차 피한다. 영화를 보는 동안 그 세상에 나를 온전히 데려다 놓는게 좋다. 영화를 보는 내내 철저히 관객의 입장에서, 바깥 세상에서 보고 싶지 않다. 게다가 속편이 아닌 이상, 미리 어떤 내용을 알고 가야만 그 영화에 대해서 더 이해되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그냥 눈으로 보이고, 귀로 들리는 그 시간 속에, 감독이 정해둔 틀에서, 배우들의 연기속에 완전히 집중해서 따라가는 게 즐겁다.
분석이 무의미해지는 순간
대부분 영화를 보면 어떠한 영화에서의 무언가를 만나고 싶어한다. 아름다운 영상미, 주인공을 주제로 한 서사를 따라가는 즐거움, 그 시대로 돌아가게 하는 몰입감, 중간중간 들어가는 스토리의 복선, 등등. 영화를 대하는 관점에 따라 각자 중요한 관점이 있을 터. 나 같은 경우에는 꽤나 감독의 장치 하나하나에 집중해서, 감독의 의도를 추측하며 분석적으로 보는 걸 즐거워한다.
근데, 이 영화 보면서는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 모든 장면들이 나에게는 어떠한 분석이 무의미했다. 식인거인족에게 쫓길 때는 온몸이 오그라들었고, 오딧세우스가 페넬로페를 다시 만나는 순간까지의 그 모든 여정들에 마치 내가 함께 하는 듯 했다. 서사는 너무도 흥미진진했고, 그 모든 장면들은 눈과 귀 모두를 사로잡았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는 시간이 되니 자리를 일어서고 싶지 않은 아쉬운 느낌은, 처음이었다. 마치 내가 3000년 전 오딧세우스가 된 마냥 그 20년간의 방랑을 함께하고, 다시 현실 속 극장으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이 모든 것들을 거의 대부분 찍었다니.... 결과물을 보니 그 노력이 헛되진 않았다.
전쟁 영웅의 부끄러움
스토리 속의 오딧세우스의 마음이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오딧세우스의 개인적인 고뇌가 먼 과거 전설 속 이야기 같이 멀지만은 않았다. 타인과의 약속이 함부로 무너지고, 그 과정에서 남의 일상을 짓밟는 힘의 논리 속에 살아가고 있다. 영화 속에서도 누군가에게는 전쟁영웅으로 불리지만, 타인과의 약속을 밟고 타인을 짓밟고 일어선 오딧세우스는, 아마도 그 모든 것들이 부끄럽고, 한없이 의미없게 느껴졌을 테다.
그럼에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하고, 자신의 인간적인 결점을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적인 모습을, 영화 내내 함께 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 순간에, 그 모든 자신의 지우고 싶던 과거를 끌어안고, 칼립소와의 행복했던 시간을 뒤로 하고 일어설 수 있었을까. 내 지나간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 이 영화에서 내게 준 교훈이었다.

오딧세우스(맷 데이먼)의 그 고뇌를 표현한 연기에 빠져들 수 밖에 없다.
나의 인생영화를 만나다
영화관을 나오고 평을 좀 찾아봤다. 그때 모습에 대한 고증의 문제나, 배우들의 대사가 너무 현대적이라는 비판, 그리고 사운드가 너무 커서 배우의 대사가 묻히는 단점 등의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다행히도 우리와는 너무 먼 고대의 얘기이고, 자막으로 영화를 본 내게는 그러한 단점들이 크지 않았다. 단점이야 있을 수 있지만, 너무도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 이 영화가 놀란의 최고작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나도 그 의견에 동감한다. 이 영화는 정말로 잘 만들어진 영화다. 더 말할 것 없이, 내게는 최고의 영화다.
왜 놀란 감독은 본인이 헐리우드 최고의 감독들 중 한 명인지 다시 한번 보여줬다. 이 오래전 전해져 온 전설의 얘기를 다룬 영화는, 신들과 함께 한 과거를 깨고 나와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 오디세이가 준 감동은, 오래도록 나를 맴돌 것만 같다.


